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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연구회

이수정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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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11-03 10:28 조회4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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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李樹廷)

최초의 한글성서 번역서『현토한한신약전서』를 간행한 개신교인.
출생 1842년(헌종 8)
사망 1886년(고종 23)

전라남도 곡성 옥과 출신으로 아버지는 이병규(李秉逵)이다. 1882년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를 충주까지 피신시킨
공으로 1882년 수신사 박영효(朴泳孝)의 수행원으로 가서 일본 체재 중 당대 일본의 대표적인 농학자이자 기독교인이었던
쓰다 센(律田仙)으로부터 근대적인 농법·법률·우편제도 등을 배웠다. 그러던 중 쓰다의 방에 걸려 있던 한문으로 쓰여진
산상수훈(山上垂訓) 족자를 읽고 감명을 받고 1883년 4월 29일 동경 노월정교회(露月町敎會)에서 일본주재 미국 장로교회
선교사 녹스(Knox, G.W.)의 입회하에 목사 야스가와(安川亭)의 집례로 세례를 받았다. 그 후 한글성서 번역에 착수했고,
일본주재 미국 성서공회 총무였던 루미스(Loomis, H.)의 권유와 협력에 따라 한문성서에 토를 단 『현토한한신약전서
(懸吐韓漢新約全書)』를 간행하였다.
이어서 번역한 『신약마가젼복음셔』는 첫 내한 선교사 언더우드(Underwood, H.G.)와 아펜젤러(Appenzeller, H. G.)가
1885년 4윌 입국할 때 들고온 성경이기도 하다. 한편, 1883년 12월 13일 선교잡지 『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에
한국의 선교를 호소하는 글을 기고해, 한국에 선교사를 파견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884년 7월 최초의 외국인 선교사 맥클레이(Maclay, R. S.)를 김옥균(金玉均) 등과 만나게 하여 입국을 실현시켰고,
1885년 1월에는 일본에 도착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기도 하는 등 한국 개신교 수용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남으로써, 1886년 귀국 뒤에 수구파의 음모로 처형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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