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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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03-03 06:51 조회70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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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성장 배경과 입교?!
*옥과현, 유학사상, 홍문관, 츠다센, 입교
1. 이수정 성장 배경
이수정은 1842년 전라남도 옥과현( 현 전남 곡성군 옥과면 ) 대학자 이병규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부산외국어대학교 김문길 교수는 후쿠자와 유기치사가 발행한 시사신보( 時事新報 )에서 “그는 전라 옥과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병규씨로 가문이 일찍이 천주교 집안이었으며, 이수정의 큰 아버지 이달규는 천주교를 믿다가 순교를 당한 집안이었다.”라고 하였다.
이수정은 일본 유학계에도 알려진 부친 이병규(李秉逵) 영향으로 학문면에 소질이 탁월했다. 오윤태 목사의 연구에 의하면, 이수정은 유학적 소양이 뛰어나 일본의 신문에 연재를 하였고 그가 성서를 번역하였던 점을 고려하면 유능한 학자였음을 말한다.
전라남도 옥과현에서 실력을 연마한 이수정은 과거시험에 응시하였으며 이후 학문연구 또는 언론기관에서 일할 수 있는 홍문관(弘文館) 직책을 맡았다. 홍문관의 기능은 조선시대에 문한(文翰)의 처리 일을 맡아보는 관청으로 집현전(集賢殿)이 재개편된 별칭이기도 하다.
물론 사학가들이 보는 견해는 조금씩 다르다. 이수정이 일본에서 루미스 선교사와 대화에서 그의 직책을 ‘조정연력기자’(Court Annalist)로 말하고 있으며, 김양선 목사는 왕의 명령을 받고 출납을 관리하는 ‘승정원’(承政院)을 역임했고 사학가 백낙준 박사는 “왕정(王政)이나 왕이 발행하는 ‘청한관계공문서’(淸閑關係公文書) 직책을 역임했다.”고 말하고 있다.
2. 이수정 입교
이수정의 입교는 만남으로 시작된다. 일본의 기독교 지도자인 농학박사 쯔다센(津田仙)의 만남이다. 처음부터 입교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안종수의 이야기를 듣고 호감이 있었던 것이다.「이수정의 성경번역과 한국교회사의 의미」를 기록한 이만열 교수는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을 다녀와서『농정신편』을 쓴 안종수로부터 소개로 츠다센을 만나는 것이 또 하나의 목적이었다.”라고 말한다.
츠다센(津田仙)의 만남은 한문 신약 성경과의 만남이었고 동방에서 떠오르는 거룩한 태양빛과의 만남이었다.
참고문헌]
George L, Paik, The History of Protestant Missions in Koorea 1832-1910, p. 11.
이수환, 2014, 『이수정 선교사 이야기』(도서출판 목양, 2014) p. 26.
배요한, “이수정의 신앙고백문에 대한 유교철학적 분석”, p. 485.
김수진, “한국 기독교 선구자 이수정』pp. 60-61.
김수진, “한국 기독교 선구자 이수정』p.61.
이수환, “이수정 선교사 이야기” p.32.
이만열, “이수정의 성경번역과 한국교회사의 의미”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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